방관자도 공범이라는 이번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세상보기

방관자도 공범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방관자는 방관자일 뿐이다. 공범은 아니지.

방조자는 형법에 의해 종범으로 처벌되지만, 방관은 방조와 다르다.
방조는 정범을 도와서 그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다.
의도가 없거나 행위가 없다면 방조가 되지 않는다. 방관이 될지는 몰라도.

도덕적으로 비난을 할 수는 있겠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다들 방관은 하며 산다. 요즘과 같이 엄청난 양의 정보가 빛의 속도로 전달되는 세상에서, 힘들고 어렵고 고통받는 이들이 세상에 넘쳐 흐르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본인의 주위에도 많을 거다. 하지만 나서서 돕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어차피 사람은 대부분 그렇게 자신의 삶과 밀접하게 엮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부분 방관하며 산다. 본인도 방관하며 살면서 남들이 방관한다고 욕할 이유는 없다. 비난을 하려면 최소한 자기한테도 들이댈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해야한다.

요즘 한창 비슷한 논리로 난리가 난 연예인이 있다.
아이돌 그룹 리더에 의한 10년에 걸친 괴롭힘과 이에 의한 모 멤버의 자살시도. 그리고 폭로.
해당 리더는 연예계 바닥에서 강제퇴출이 될 것 같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 그룹을 거의 먹여살리기까지 해온 유명 멤버가 오랜기간 가해자와 절친이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방관자도 공범”이라며 비난하고 나선 거다. (관련해서 방관자도 괴롭힘에 대해 알고 있었을 거라는 의심을 사게하는 과거 방송영상들이 다수 발굴되고 있다).

AOA. 사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이름마저 낯선 사람들이라 또 뭔가 사건이 벌어졌나보다 하고 넘어갔었는데, 방관자적 공범으로 비난받는 사람은 이름을 알겠더라.

설현. 한 때 극단적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언행으로 페미니스트 논란이 있었다.

그 이름을 보고나니 기억이 났다. AOA 그룹이 페미니즘 열풍을 타고 페미니즘 이미지를 내세워서 핫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거기까지 보고나니까 이해가 되더라. 가해자가 연예계에서 퇴출되는 상황까지 갔는데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 이유가.

방관자도 공범이라며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을 공격적으로 비난하는 이념논리가 하나 있다. 페미니즘. 여성이 받는 고통을 없애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만으로도 여성혐오 공범이라는 논리로 대부분의 선량한 남성을 여혐주의자로 몰아가기까지 한다.

그런 페미니즘을 내세워 그룹차원의 인지도를 끌어올린 그룹에서 집단내 괴롭힘이 오랜기간 이어졌고, 최소한 그 사실을 뻔히 알았을 멤버, 그 중에서도 가해자의 절친인 페미니스트에 대한 비난은, 글쎄... 과하다 싶긴 한데, 자업자득이 아닐까 싶다.

내가 볼 땐, 이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단순히 도덕적인 비난을 하는 게 아니라, 감정이 섞여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유승준이 군대 논란으로 아직까지 국내에 입국도 하지 못하고 입국하려고 한다는 기사만 떠도 수많은 군필자들이 난리를 쳐대는 걸 보면, 단순한 도덕적/법적 잘못의 문제와는 달리 감정이 끼어들게 되는 사건이 얼마나 오랜기간 영향을 미치는 지 알 수 있다.

안됐지만, 아무리 운 좋게 여론이 주춤하며 위기를 견뎌내더라도, 감정적인 비난을 멈추지 않을 안티가 엄청나게 늘어난 이 상황에서, 쉽지 않은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 유승준 입국과 관련된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세요.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489247

무한경쟁시대와 공정한 경쟁 그리고 그 사이의 도태 세상보기

근래 10년 정도 사이에 급격하게 출산율이 떨어지는 걸 보며, 난 당연히 올 것이 왔다 싶었다.

이 따위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 애 낳아봐야 똑같이 노예가 되겠지 하는 얘기가 처음 나온 게 한 15년은 된 것 같다.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하고 채 10여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생각해보면 김영삼이 무한경쟁시대를 선언한 이후 30년이 조금 못 되는 세월이 흘렀다. 보통 한 세대를 30년정도로 보니까, 이제 겨우 하나의 세대가 지나가는 중이다.

아마 난 무한경쟁이란 말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무한히 경쟁한다? 헐... 적당한 경쟁도 치열한 경쟁도 아니고 무한한 경쟁? 다들 나가떨어지고 태반이 도태되겠구나 싶었다.

이제 그 결실이 나타나는 것 아닌가 싶다.

근래에 “공정한 경쟁”이 이슈다. 특히나 젊은 세대에서 경쟁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것에 무척 민감하다.

하지만, 난 이 사고의 틀 자체가 애초에 무한경쟁 프레임에 갇혀 엇나가있어 보인다. 공정한 경쟁,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젊은 세대고 나이든 세대고, 진짜 지쳐 떨어져나가고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며 자살로 내몰리게 되는 까닭은, 경쟁이 공정하지 못해서만은 아니다.

무한이 해나가라 강요되는 경쟁. 지쳐도 멈출 수 없고, 떨어졌을 때 뒷받침을 해줄 수 있는 안전망이 전무한 상황에서 외줄 위에서 이 악물고 나아가야 하는 끝나지 않는 경쟁. 쉬지도 못해 번아웃 증후군은 다들 일상처럼 곁에 두고 사는 세상. 경쟁이 공정해진다고 해결이 될 문제일까?

그런 경쟁에서 버텨내기 위해 사람들은 책임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책임을 덜기 위해 욕망도 내려놓고 있다. 출산과 육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책임의 회피. 이를 위해 연애도 사랑도 다 포기하고, 그냥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챙기겠다며 소확행에 몰입한다.

무한경쟁시대가 시작된지 이제 한 세대가 지나간다.

다음 세대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경쟁을 포기하고 스스로 도태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끝없이 늘어나는 시대. 10년후면 경쟁을 해야할 사람이 반토막이 되는 시대.

다음 세대에까지 무한경쟁이 끝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끝끝내 계속된다면, 어쩌면 최후의 승자 1명을 남기고 나머지 모두가 도태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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